한달 살기

탈린은 수돗물을 즐겨 먹는다

식당에서 수돗물을 주는 도시의 신선한 경험

겨울에 동남아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두 번 한 경험이 있다. 필리핀 비누부산(Binubusan)과 태국의 치앙마이였는데, 그곳들은 수돗물 수질이 최악이었다. 양치질 후 입을 헹굴 때조차 생수를 사용했을 정도였다. 수질이 안 좋은 가장 큰 이유는 배관이 노후화돼서 안으로는 녹이 슬고 외부에서는 흙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탈린에서 오랜만에 외식을 하다가 신선한 경험을 했다. 직원이 일반 생수(Still water)가 떨어졌다면서 “Sparkling or Tap?(탄산수 아니면 수돗물?)”이라고 묻는 것이었다. 탭이라고 답했더니, 정말로 내가 보는 앞에서 수도꼭지를 틀어 수돗물을 유리잔에 담아다 주었다.

탈린의 수돗물은 얼마나 안전할까?

탈린의 수돗물은 음용수로 바로 마실 수 있을 만큼 안전하고 깨끗하다. 실제로 탈린 주민의 89%가 수돗물을 신뢰한다고 답했다.1

물론 수돗물을 신뢰한다는 것과 실제로 마트에서 생수를 대량으로 구매하지 않고 집에서 수돗물만 사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탈린 대형마트에 가보면 여전히 1.5L짜리 생수병을 쌓아 놓고 팔기 때문이다.

탈린 사람들이 생수를 구매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공식 통계는 없지만 탈린은 우리나라처럼 마트에서 생수를 대량 구매해 주된 식수로 사용하는 가정의 비율이 매우 낮다고 한다. 마트에서 물을 사서 마시는 소수의 가정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첫째는 노후 배관 문제다. 100년이 넘은 목조 주택이나 구소련 시절 지어진 노후 아파트 중 일부는 내부 배관이 낡아 녹물이 섞여 나오기도 한다. 즉 정수장 물은 깨끗해도 집으로 오는 배관이 문제인 경우다.
  • 둘째는 경수 특유의 맛 때문이다. 탈린의 수돗물은 미네랄(칼슘, 마그네슘) 함량이 높은 경수(Hard water)에 가까운데, 석회질 특유의 텁텁한 맛을 싫어하거나 석회 침전물이 냄비나 커피머신에 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은 연수(Soft water) 성향의 시판 생수를 사다 먹는다.
  • 마지막으로 탄산수 소비다. 탈린의 대형마트(Rimi, Maxima, Selver 등)에는 일반 생수만큼이나 탄산수(Sparkling water)가 대량으로 판매된다. 수돗물은 일반 생수이기 때문에 톡 쏘는 탄산수를 기호 음료처럼 즐기기 위해 마트에서 물을 구매하는 문화가 발달한 것이다.

에스토니아의 생수 소비량은 얼마나 낮을까?

유럽 국가들의 연간 평균 생수 소비량은 인당 약 112리터에 달한다. 반면 에스토니아의 인당 연간 생수 소비량은 고작 32리터에 불과하다.2

이는 1년 동안 고작 1.5L짜리 생수병을 약 21병을 비우는 양이다. 이 수치는 집에서 수돗물 대용으로 생수를 대량 구매해 쌓아두고 마시는 문화가 가구 단위에서 거의 정착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간접 지표가 된다.

다른 유럽 국가인 이탈리아(188리터)나 독일(175리터)처럼 생수 소비량이 압도적인 국가들에 비하면 에스토니아인들이 얼마나 수돗물을 일상적으로 잘 마시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경수(Hard Water) vs 연수(Soft Water)

평생 한국 수돗물만 써봐서 몰랐는데 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대표적인 연수 국가이다. 이유는 지질 특성 때문이다. 경수는 물속에 칼슘과 마그네슘(석회 성분)이 많아 녹아 있는 물이다. 탈린의 수돗물은 유럽 기준에서는 석회가 적은 편이지만, 한국 물(연수)과 비교하면 약한 경수에 가깝다.

구분연수 (한국)경수 (유럽 대다수)
비누 거품거품이 아주 잘 나고 매끄럽게 씻김미네랄과 비누가 엉겨 붙어 거품이 잘 안 남
샤워 후피부와 머릿결이 부드러움피부가 건조하고 머릿결이 뻣뻣해짐
가전제품가전제품 내부에 이물질이 안 생김커피포트, 싱크대에 하얀 석회 자국이 남음
깔끔하고 청량함 (차, 밥 지을 때 좋음)약간 묵직하거나 텁텁한 맛이 남
  1. 탈린의 상수도 당국인 Tallinna Vesi 공식 홈페이지 ↩︎
  2.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consumption-of-bottled-water-in-EU-countries-2016-source_fig3_341684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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