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살기

탈린의 공기질

새로운 도시로 떠나기 전, 내가 ‘수질’과 ‘공기질’을 체크하는 이유

새로운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준비할 때, 나는 그 지역의 수질과 공기질을 사전에 철저히 체크하는 버릇이 있다. 흔히 동남아시아 지역은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대부분 수질이 좋지 않다고들 한다. 사실 수질 문제는 필터 샤워기를 넉넉히 챙겨가는 것 외에는 개인이 대비할 만한 방법이 딱히 없다.

하지만 공기질은 이야기가 다르다. 만약 머무르려는 도시의 대기질이 우리나라보다 많이 안 좋다면 그 도시는 피하는 게 좋다. 한 달이라는 귀한 시간을 내어 머무는데,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까지 여행할 가치가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1년 365일 ‘좋음’, 탈린의 압도적인 대기질 수치

에스토니아 탈린의 공기질은 단연 최고 수준이다. 전 세계 수도 중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실제로 탈린은 유럽연합(EU)으로부터 ‘2023 유럽 그린 캐피탈1(European Green Capital 2023)’로 선정된 적도 있다.

미국 환경청(EPA) 기준에 따른 AQI(대기질 지수) 단계는 다음과 같다.

  • 0 ~ 50: Good (좋음)
  • 51 ~ 100: Moderate (보통)
  • 101 ~ 150: Unhealthy for Sensitive Groups (민감군 위험)

탈린은 1년 365일 내내 이 ‘좋음(Good)’ 단계를 유지한다. 반면 서울은 대기질이 좋음을 기록하는 날이 한 달에 고작 2~3일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다.

그래도 위안을 삼자면 서울 역시 많이 쾌적해졌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발 미세먼지의 공습으로 마스크 없이는 힘들 정도였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상황이 정말 좋아진 편이다.

[탈린과 서울의 지난 한 달간 일별 AQI 지수 비교 그래프]


탈린의 공기질이 완벽할 수밖에 없는 4가지 이유

1. 낮은 인구밀도와 친환경 교통
수도 탈린의 전체 인구는 고작 45만 명 남짓이다. 인구가 적으니 차량 숫자도 적은 데다가, 대중교통 무료 정책이라는 파격적인 시스템을 통해 차량 배기가스를 적극적으로 줄이고 있다.

2. 청정 산업 구조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이른바 ‘굴뚝산업’이라 부를 만한 제조업 기반이 도심에 거의 없다.

3. 압도적인 녹지 비중
에스토니아 국토의 절반 이상이 청정한 숲과 습지로 이루어져 있어, 도시 전체가 거대한 천연 공기청정기 역할을 한다.

4. 탁월한 지리적 이점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덕분에 사시사철 불어오는 해풍이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미세한 대기 오염 물질까지 빠르게 확산시켜 날려 보낸다.


데이터로 보는 유럽과 글로벌 공기질 가이드

탈린뿐만 아니라 북유럽 도시들은 전반적으로 공기질이 매우 훌륭하다. (※ 아래 지도는 상대적 비교이므로 붉은색이라고 해서 절대수치가 반드시 최악인 것은 아닙니다.)

[유럽 내 761개 도시의 대기질 분위수(1~10) 비교 지도2]

[유럽 초미세먼지(PM2.5) 1년 평균 절대 수치 지도3]

유럽 전체로 보면 대체로 동유럽과 발칸반도 국가들의 수치가 좋지 않고, 터키(튀르키예)가 가장 좋지 않다. 하지만 터키의 국가 평균 수치조차 인도나 파키스탄의 3분의 1 미만 수준이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같은 남아시아의 극심한 오염 지역 도시들은 이 지도의 표현 범위를 아득히 초과하는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이해하면 정확하다.


한국 vs 에스토니아: 수치와 체감이 다른 숲 이야기

재미있는 사실은 에스토니아의 국토 대비 숲 비율은 56%4인 반면, 한국은 654.1%로 오히려 수치상으로는 한국이 더 높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숲의 스케일은 에스토니아가 압도적인데, 여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 시야를 가로막는 산 vs 끝없이 펼쳐진 숲
  • 한국: 숲이 대부분 가파른 산에 모여 있다. 도심이나 도로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산줄기가 벽처럼 앞을 가로막기 때문에 입체적인 벽처럼 느껴진다. 진짜 울창한 숲을 만나려면 마음을 먹고 산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계가 존재한다.
  • 에스토니아: 평지에 숲이 있다 보니 지평선 끝까지 평평하게 이어진다. 차를 타고 이동해도 창밖으로 끝없는 숲이 수평으로 계속 펼쳐진다. 집 앞마당을 나서서 걷다 보면 어느새 거대한 원시림 속에 들어가 있을 정도로 생활권과 숲이 섞여 있다.
인구 밀도의 절대적인 차이
  • 한국: 숲 비율이 높지만, 숲이 없는 남은 37% 남짓한 땅에 5천만 명이 넘는 인구가 모여 살다 보니 어딜 가나 건물과 사람이 빽빽하다.
  • 에스토니아: 남한 국토의 절반 크기만 한 땅에 인구는 고작 130만 명 정도만 산다. 사람보다 나무가 압도적으로 많은 환경이다 보니 발길 닿는 곳마다 숲의 기운을 훨씬 강하게 느끼게 된다.

글을 마무리하며

다음 주면 드디어 탈린의 이 완벽하고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수치로만 보던 청정 도시의 공기를 직접 들이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깊숙한 곳부터 설레 온다!

  1. https://environment.ec.europa.eu/topics/urban-environment/european-green-capital-award/winning-cities/tallinn-2023_en ↩︎
  2. https://www.eea.europa.eu/en/topics/in-depth/air-pollution/european-city-air-quality-viewer ↩︎
  3. https://www.eea.europa.eu/en/analysis/maps-and-charts/air-quality-statistics-dashboards ↩︎
  4. https://www.visualcapitalist.com/cp/europes-most-forested-countries/ ↩︎
  5.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AG.LND.FRST.Z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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