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살기

헬싱키 당일치기 도보 여행

헬싱키 건축 투어

하루 당일치기로 헬싱키(Helsinki)를 걸어서 돌아보려면 어디를 가보는 게 좋을까. 이번에도 AI를 이용해 동선을 짰고, 거의 그대로 따랐다. 나의 주된 관심사는 도서관 투어였는데 처음에는 유명한 오오디(Oodi) 도서관 하나만 포함되어 있어서, 추가로 질문하여 헬싱키 대학교 도서관을 일정에 넣었다. 그리고 구글 맵을 살펴보던 중 헬싱키 국립도서관도 발견하여 최종 동선을 완성했다.

구글 지도를 보면 헬싱키는 온통 뮤지엄 투성이다. 짧은 당일치기 일정이라 뮤지엄 안으로 들어가서 감상하는 것은 포기하고 외관만 구경하기로 했다. 건축물 자체로도 충분히 멋지게 생겼을 것이라 위안을 삼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헬싱키 대성당(Helsinki Cathedral)

유럽 여행을 가면 가장 흔하게 만나는 랜드마크는 단연 오래된 성당과 교회다. 헬싱키도 예외가 아니었다. 터미널에서 7번 트램을 타고 20분 만에 도착하니 넓은 광장이 보였고, 거대한 계단 위에서 순백색의 웅장한 헬싱키 대성당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찌나 압도적인지 그 주위의 다른 건물들을 일순간에 초라하게 만들 정도였다.

헬싱키 대학 도서관(Helsinki University Library)

헬싱키 대학교는 총 4개의 캠퍼스가 있다. 그중 중앙 캠퍼스(City Centre Campus)는 시내 한복판의 평범한 오피스 빌딩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카이사 하우스(Kaisa House)라고 불리는 건물에 있는 도서관인데, 헬싱키 대성당에서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일반인도 아무런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어서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방학 기간이라 내부는 한산했다. 중심부에서 곡선을 그리며 회전해 올라가는 구조를 가진 헬리컬 계단(Helical staircase) 또는 나선형 계단(Spiral staircase)이 무척 인상 깊었다. 재미있게도 오늘 여정에서는 이런 형태의 계단을 다른 곳에서도 계속 마주치게 된다.

참고로 핀란드는 대학까지 무상 교육을 실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EU 국가 출신의 유학생들에게도 학비가 전액 무료라는 사실이다.

우스펜스키 대성당(Uspenski Cathedral)

처음에 너무나 강렬한 헬싱키 대성당을 보아서 그런지, 우스펜스키 대성당은 상대적으로 감흥이 덜했다.

시장(Helsinki Market Square 및 Old Market Hall)

세 군데를 연달아 돌아보니 어느덧 오전 11시가 넘어 있었다. 점심도 해결할 겸 근처 해변 시장으로 출발했다. 성당에서 내려오는 길에 해변가에 위치한 알라수 야외 수영장(Allas Pool)이 보였다. 당시 기온이 25도 안팎이었는데, 수많은 사람이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북유럽 사람들이 이 짧은 여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해변에 천막으로 늘어선 시장통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으나, 원하던 메뉴가 마침 떨어졌다고 하여 아쉽지만 다음 장소로 향했다. 이때 정신이 없어서 바로 옆에 있던 올드 마켓 홀(Old Market Hall)을 깜박하고 건너뛴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카페 알토(Café Aalto)

원래 AI가 짜 준 방문지 리스트에는 없었으나, 워낙 유명한 명소라고 하여 점심 식사를 해결할 겸 들어가 보았다. 카페인 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분명 큰 서점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니 구석에 아담하고 평범한 카페가 자리하고 있었다.

서점을 왜 카페 알토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궁굼했다. 핀란드의 세계적인 건축 디자이너 알바 알토(처음 들어 봄)가 이 건물을 설계했을 당시에는 원래 서점만 존재했다고 한다. 핀란드어로 아카테미넨 키르야카우파(Akateeminen Kirjakauppa), 직역하면 아카데믹 서점(The Academic Bookstore)이라는 이름의 이 서점은 1893년에 처음 창립되었다. 이후 여러 군데로 이사를 다니다가 1969년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이 현대적인 건물이 완공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원래 알바 알토는 근처의 다른 건물인 라우타탈로 빌딩에 라우타탈로 카페라는 유명한 공간을 디자인한 적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그 카페가 문을 닫게 되자,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후대 사람들이 그곳에 있던 알바 알토의 오리지널 의자와 테이블, 가죽 소파, 황동 조명 등을 그대로 수습해 왔다. 1986년 현재 서점 건물 2층에 그대로 재현해 낸 것이 바로 지금의 카페 알토다. 본질은 서점인데 카페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셈이니 허무하다.

나는 본 적이 없지만,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주인공들이 처음 만나는 주요 배경이 바로 이 카페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사진을 찍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았고 메뉴판도 일본어로 병기되어 있는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설계 단계부터 오직 서점만을 위한 맞춤형으로 건축되었다. 1층부터 위층까지 가운데가 탁 트인 중정(Atrium) 구조로 되어 있고, 천장에 거대한 유리 천창들을 설치해 자연광이 서점 가장 깊숙한 1층 바닥까지 쏟아져 내리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었다. 오늘 여정에서는 이런 형태의 중정을 다른 곳에서도 계속 마주치게 된다.

깜삐 예배당(Kamppi Chapel)

독특한 달걀 모양의 나무 구조물인 깜삐 예배당을 지나가면서 사진만 찍었다. 나무 느낌이 아니고 진짜 나무다.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내부 사진을 보면 꼭 사우나 내부처럼 아늑하게 목재로 마감되어 있다고 한다.

아모스 렉스(Amos Rex)

현대 미술관(Contemporary Art)이다. 실제 전시장은 지하에 위치해 있는데 나는 지상 광장 위로 지나갔다. 광장 바닥 위로 볼록볼록 솟아오른 기하학적인 언덕들을 보고 문어 빨판을 연상했는데, 건축가의 원래 의도는 잠수함의 창문이었다고 한다. 볼록 솟아오른 돔들의 꼭대기마다 동그란 유리창이 박혀 있는데, 이는 지상의 햇빛과 헬싱키의 하늘을 지하 전시장 깊숙한 곳까지 배달하고자 한 창의적인 시도다.

템펠리아우키오 교회(Temppeliaukio Church)

오늘 헬싱키 여정 중 유일하게 입장료를 내고 내부를 관람한 곳이다. 외관은 마치 돌산 위에 거북이 등껍질이 단단히 붙어 있는 고대 무덤 같은 독특한 형상이다.

교회 내부는 천연 암석의 거친 특징을 그대로 살려 벽을 만들었다. 천장은 나무 소재 같았으나, 2층으로 올라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교하게 가공된 구리 금속이었다.

오오디 중앙도서관(Helsinki Central Library Oodi)

멀리서부터 거대한 UFO 혹은 공상과학 선박을 연상시키는 초현실적인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인 헬싱키 중앙도서관 오오디다.

도서관은 넓은 광장을 감싸고 있으며, 주변에는 헬싱키를 대표하는 핵심 문화 기관들이 밀집해 있었다. 키아스마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Kiasma), 헬싱키 음악당인 무지키탈로(Musiikkitalo), 컨벤션 센터인 핀란디아 홀(Finlandia Hall), 그리고 국회의사당(The Parliament House)이 이 그것이다.

헬싱키 국립도서관(The National Library of Finland)

오오디 도서관을 나와 천천히 걸으며 주변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처음 출발점이었던 헬싱키 대성당까지 20분 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헬싱키 대성당 바로 옆에 헬싱키 국립도서관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자칫하면 깜박하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입구를 찾지 못해 잠시 헤맸는데, 알고 보니 평범한 나무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직접 밀고 들어가야 하는 구조였다. 묵직한 문을 열고 투명한 회전문을 통과해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방금 전 오오디 도서관의 현대적인 느낌과는 정반대인 중세 성당이나 수도원 분위기의 고풍스러운 서가가 눈앞에 펼쳐진다. 특유의 정겨운 헌책방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이곳은 희귀 문헌 컬렉션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다시 원래의 출발점이었던 헬싱키 대성당 앞 원로원 광장(Senaatintori)으로 돌아왔다. 광장 노점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시간을 즐겼다. 오늘 돌아 본 곳들은 반경 1km 이내에 있기 때문에 하루면 돌아 보는데 충분했다. 아침에 내렸던 곳의 반대 방향 승강장에서 7번 트램을 타고 크루즈 터미널로 향하는 것으로, 오늘 하루 동안의 알찬 헬싱키 당일치기 도보 여행을 마무리했다.

하루 동안 발견한 핀란드 건축의 핵심 DNA

오늘 하루 동안 헬싱키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을 돌아보며 느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공감할 만한 건축적 규칙이다.

중앙 중정(Void)과 천장의 자연 채광

핀란드의 건축은 실내가 하나의 거대한 통합 공간처럼 느껴진다. 창문만으로는 건물의 깊은 내부까지 빛을 보낼 수 없기 때문에, 건물 중앙을 1층부터 천장까지 과감하게 뚫어버리는 아트리움(Atrium) 혹은 중정(Void) 구조를 적극적으로 취한다. 그리고 그 천장에 대형 유리창을 내어 자연광이 건물의 가장 낮은 바닥까지 분수처럼 쏟아지게 만든다. 오오디 도서관의 경우 천장 구멍을 들여다보면 실제 전구가 달려 있기도 하지만, 디자인으로 자연 채광의 느낌을 구현해 낸 것은 분명하다.

대담한 나선형 계단

핀란드 건축에서 계단은 내부 공간과 단절된 채 단순히 층과 층을 이동하기 위한 보조 도구가 아니다. 뻥 뚫린 중앙 중정 공간을 과감하게 가로지르는 나선형 계단들은, 오르내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건물 내부의 입체적인 구조를 다양한 각도와 시선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재미를 선사한다.

나무의 적극적인 활용

핀란드는 국토의 대부분이 울창한 숲으로 덮인 나라다. 주변 환경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천연자원이 바로 목재다. 북유럽의 차갑고 긴 겨울 동안 돌, 철, 콘크리트 같은 차가운 인공 소재에만 노출되면 인간은 쉽게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핀란드 건축가들은 이러한 기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건물의 실내외에 목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시각적, 촉각적 따뜻함을 공간에 부여했다.

One response to “헬싱키 당일치기 도보 여행”

  1. 우와 너무 멋지네요. 공기가 달라보여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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